February, 2008


25
Feb 08

대학교 졸업

대학교를 졸업했다.

나는 99학번이니, 햇수로 10년 만이다.

H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안에서의 나의 10년 간의 삶은 나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버렸다. 내가 만난 사람들, 선배들, 교수님들..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데에 든든한 발판이 될 것임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모범이 된 선배들, 힘이되어준 동기들, 멋있는 후배들, 교수님들… 그들의 조금씩의 시간과 노력이 나를 이렇게 성장 시켰다.

또한 많은 공부, 행사, 역할 들을 청춘과 열정의 이름으로 멋있게 해낸 나를 칭찬해 주고싶다.

나의 대학생활은 진정 아름다웠다. 멋졌다.


25
Feb 08

노무현, 안녕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5년이 끝났다.

나는 그가 선거에서 이길 때 그가 펼쳐 나아갈 개혁에 매우 고무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를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다. 그가 열심해 했다고 믿고있고, 지난 5년동안, 지금 외부로 나타나는 부정적인 현상들 보다 긍정적인 변화들이 더 많았다고 생각하고 싶다.

5년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말 그대로 국민 드라마 였고 그 시간은 정말 감동의 도가니였다. 당선 1년전 만 해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노무현의 당선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며 돼지저금통으로 상징되는 깨끗한 정치의 시작인 듯 했다.

하지만 이제는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것이 유행어가 될 만큼,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일 정도로 노무현의 이미지는 추락했다. 그것이 그의 신자유주의 노선 채택에 따른 지지세력의 이탈 때문인지, 거대 신문들과의 관계조율 실패 때문인지, 그의 리더십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의 방향성은 옳았으되, 그 방향으로 가기위해 나라의 수 많은 정부 조직과 언론, 그리고 여론을 효과적으로 주도해 나아가지 못한 것이 이 결과의 원인 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장관도 지냈었지만, 노련한 “정치인”은 아니다. 노련한 정치인들의 거래 하고 타협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못한 점이 그가 한국 정치 환경에서 잘 살아남지 못한 이유일런지도 모른다.

어느 조직의 수장을 맡게 되는 것은 그가 그럴 능력과 조직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5년동안 대한민국을 위해서 누구보다 노심초사 했음을 나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노무현 때문” 이라는 감정섞인 비판을 하기 보다는,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일한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그가 말하던 대로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 속에서 ‘성공’했다고 평가 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3
Feb 08

디스켓 정리하기

디스켓들..USB 플로피 드라이브집 책상을 정리하던 도중.. 플로피디스크 몇장이 나왔다.

언젠가는 정리해야지.. 하고 생각하다 미루고 미루었던 플로피 디스크들.. 그리고 집에서 굴러다니던 compaq USB 플로피 드라이브의 조합으로 플로피 디스크들을 정리했다. 더 이상 미루면 플로피 드라이브를 구할 수 없어서 내용을 정리할 기회조차 없어질 것 같았다.

재미있는 것들은.. 오랜만에 보는 조합형 코드로 된 문서들 (아래한글을 통해서 내용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잘 나가던 LZH 나 ARJ 그리고 RAR같은 압축 형식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내 기억으로는 LZH 에서 ARJ로.. 그리고 RAR로.. 유행이 지나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ZIP이 압축방식의 대명사가 되었다.

내용물들은.. 옛~날 주소록, 증명사진, 동급생 (ㅡㅡ;), 동급생 공략집, PCTOOLS(추억의 만능 프로그램), M(지금의 total commandar 같은 한국을 지배했던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텍스트 파일의 확장자가 CAP로 되어있어서 예전의 새롬데이타맨과 이야기의 기억들을 불러내 주었다. (예전에 나우누리, 천리안 등 PC통신 시절에는 파일을 CAP로 저장했다. 캡쳐의 약자인듯하다)

아주 옛날 이야기 같지만, 오래돼봤자 10년전 이야기 들이다. 10년전만 해도 익스플로러와 파이어폭스가 아닌, 새롬데이타맨과 이야기 의 시대였다. 이제 10년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기술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있는데..